▶세계적 흐름 ‘빈야드’…물리적·심리적 거리 낮춘 무대와 객석=독일 ‘베를린 필하모닉홀’(1963), 일본 ‘산토리홀’(1986), 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2003), 프랑스 ‘필하모니 드 파리’(2014) 등 세계 유수 콘서트홀은 모두 빈야드 스타일로 설계됐다. 롯데콘서트홀은 산토리홀을 참고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빈야드 스타일은 1950년대 독일에서 전쟁으로 파괴된 콘서트홀들을 재건축하면서 도입된 건축양식이다. 1956년 슈투트가르트에서 복합문화센터인 리더할레(Liederhalle)를 건설하며 지은 752석짜리 모차르트 홀이 ‘최초’이자 ‘원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빈야드 스타일의 콘서트홀이 주목받은 것은 단연 베를린 필하모닉홀이다.
‘빈야드 스타일’ 콘서트홀과 기존 콘서트홀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와 위치다.
오랜 역사를 가진 콘서트홀의 형태인 ‘슈박스(shoebox, 구두상자) 타입’ 공연장은 무대와 객석이 마주보며 평행한 모습을 이룬다. 보스톤 심포니 홀, 콘서트헤보, 에스플러네이드가 대표적이다. 예술의전당과 같은 ‘팬(Fan, 부채꼴) 형태’의 공연장도 한쪽에는 무대가, 반대쪽엔 객석이 위치한다. 두 형태의 공연장은 관객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고정되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나 연주자들을 올려다보게 된다.
롯데콘서트홀의 설계를 맡은 DMP건축사무소 박세환 본부장은 “롯데콘서트홀에 처음 들어갈 때의 형태나 모습은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봐온 공연장과 달리 현대적이고 자유분방하다”며 “관객 역시 지휘자의 뒷모습, 연주자의 한쪽 방향만 봤다면 빈야드 스타일에선 시각적 스펙타클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빈야드 스타일의 핵심은 객석이 무대를 둘러싼 “휴먼 스케일화”다. 빈야드 스타일에선 무대가 콘서트홀의 중앙에 가깝게 위치한다. 롯데콘서트홀의 경우 전체 객석을 37개 구획으로 나눴다. “사람의 귀가 좌우대칭인 것처럼 객석 역시 좌우 대칭적 성격을 부여해 디자인”(박세환 본부장)됐다. 관객들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다방향으로 뻗어나간 모습이다. 청중은 연주자를 전후 상하 좌우에서 바라본다. 무대의 중심인 지휘자의 위치를 기준으로 전, 후면 객석 비율은 7대3으로 뒀다.
박 본부장은 “빈야드 형태의 장점은 객석과 무대의 거리를 최소화해 연주자와 관객이 숨소리까지 교류하며 공연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거리에서 공연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구경하는 모습과 닮았다.
‘물리적 거리’는 물론 ‘심리적 거리’도 가까워졌다. 무대의 높이도 낮췄기 때문이다. 보통의 공연장에서의 무대는 80~90㎝이나 올라가나 롯데콘서트홀은 60㎝로 낮춰 친밀감을 높였다.
무대 위에도 ‘휴먼스케일’이 적용됐다. 라운드형 무대 리프트는 총 4단으로 설치됐다. 고정무대의 높이를 0으로 삼아, 각 단이 최대 1m20㎝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롯데콘서트홀 관계자는 “지휘자의 신장에 따라 각각의 악기군과 편성별로 악단을 바라보는 지휘자의 시야를 편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고, 편성에 따라 특정 악기군의 높낮이를 미세하게 조정해 음악의 밸런스를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리허설 중엔 지휘자들이 특정단을 어느 정도 올려달라거나, 내려달라는 주문을 하면 즉석에서 전자동 리프트의 높이를 조정한다.
▶클래식과 모던 사이…아름다운 공간 디자인=공간은 전체적으로 ‘과유불급’의 가치를 담았다. “지나치게 클래식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지나치게 모던하지 않은 공연장”으로 디자인됐다.
박 본부장은 “무대의 재료, 벽체의 색깔, 의자 소재의 질감, 로비에 깔린 돌의 미세한 차이까지 고려해 설계됐다”며 “의도 없이 완성된 디자인은 없다”고 강조했다.
디자인은 로비부터 시작된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롯데월드 몰이라는 공간의 특성이 반영됐다. 롯데월드 몰의 식당가에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콘서트홀에 당도하면 물 흐르듯 이러지는 반짝이는 대리석, 시원하게 자리잡은 커다란 창, 저녁 시간에도 화사하게 빛나는 조명이 경쾌하고 활발한 느낌을 준다. 보통의 콘서트홀과는 달리 “로비에 과감하게 에스컬레이터를 설치, 역동적인 분위기”를 냈다. 반면 티켓부스의 색감은 낮춰 안정감을 살렸다.
로비에서 오디토리움으로 입장하면 벽, 무대, 객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체적으로 보면 무대의 색이 가장 밝고, 바닥과 의자 등으로 색감이 짙어진다.
콘서트홀의 주인공인 무대는 “가장 빛나야 하는 만큼 가장 밝은 색의 목재를 선택”했다. 화사하면서도 온화한 색감의 알래스카 시다(Alaska Cedar)를 무대 바닥에 사용했다. “약간 무른 질감”의 나무다. 천장의 경우 “볼륨감을 주기 위해 백색으로 처리”됐고, 벽의 커다란 아치는 “목재 질감을 살려 안정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느낌”을 냈다.
객석 의자의 색깔은 붉은색을 썼다. 박 본부장은 “클래식 공연장에서의 붉은색은 관객들의 열기를 높여줘 기대감과 흥분을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롯데콘서트홀을 자주 찾은 눈썰미 있는 음악가나 관객들은 눈치챘을 수도 있다. 롯데콘서트홀의 의자색은 앞자리와 뒷자리가 다르다. 뒤로 갈수록 색이 조금씩 짙어진다. 박 본부장은 “규칙적인 그라데이션이 아니라 랜덤하게 색을 섞었다”며 “관객이 없어도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효과를 낸 것”이라고 귀띔했다.
▶ “오디토리움은 하나의 악기”…최고의 음향을 위한 길=무대, 천장, 객석의 배열까지 콘서트홀의 모든 공간 배치에 계산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 거기엔 청각적 요소들도 결합한다. 클래식부터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 공연이 열리는 공간인 만큼 콘서트홀의 핵심은 ‘음향’이다.
박 본부장은 “오디토리움은 하나의 악기”라며 “롯데콘서트홀은 월드클래스의 음향을 추구하되 클래식한 원리를 적용하면서도 최첨단의 음향과 건축기술을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빈야드 스타일’ 공연장의 핵심인 어느 위치에서든 ‘평등한 음향’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다.
빈야드 스타일로 설계된 공연장 내부의 모든 요소가 음향에 영향을 미친다. 조명, 영상 장비의 소음 차단, 객석 의자의 흡음률 등 모든 것이 고려 대상이다. 심지어 “무대 바닥에 페인트칠을 몇 번 하느냐에 따라 음향적 특성이 달라진다”(박세환 본부장).
롯데문화재단 관계자는 “섬세하고 풍부한 음향을 위해 내부의 바닥, 벽, 천장을 외부 구조로부터 분리한 박스-인-박스(BOX-in-BOX) 구조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벽과 천장 전면에 마이크로 쉐이핑과 계단형 소핏을 적용, 소리의 난반사와 집중화를 방지했다. 또 바닥과 천장에는 절연패드를, 벽면에는 이중벽과 어쿠스틱 조인트를 설치해 진동 전달을 최소화했다.
롯데콘서트홀의 경우 객석은 낮은 벽으로 둘러싸여 다양한 높낮이를 보여준다. 이로 인해 슈박스나 팬 타입과는 달리 무대 주변에 음향을 1차적으로 반사시켜 줄 벽면이 많지 않다. 이로 인해 천장이나 천장 반사체를 활용해 음향 효과를 높였다.
객석을 여러 개로 나눈 다양한 각도의 낮은 벽체는 반사된 소리를 객석으로 다시 돌려주는 역할을 한다. 무대가 중앙부로 나와 있어 무대 측면과 후면에 앉는 관객은 무대 전면 VIP만큼의 거리에서 공연을 가깝게 즐길 수 있고,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좋아하는 악기 연주를 경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빈야드 스타일의 공연장은 슈박스, 팬 타입 공연장보다 음향 설계가 몇 배는 어렵고 까다롭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톤 마이스터인 최진 음악감독은 “빈야드 스타일의 콘서트홀은 음향적으로 동등한 사운드를 내기 위한 구조로 설계된다”며 “롯데콘서트홀의 경우 국내 어느 공연장보다 녹음하기 좋은 홀이다. 일차 반사음이 아름답고 잔향의 길이가 충분해 고급스러운 소리가 난다”고 평가했다.
완벽한 음향설계를 위해 롯데콘서트홀은 “6~8개월간 세 차례에 걸쳐 10분의 1 모델링 테스트를 진행”했다.
롯데콘서트홀의 음향 설계를 총괄한 ‘나가타 어쿠스틱스’의 야스히스 도요타는 “빈야드 스타일의 콘서트홀은 공간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며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도 찾아내지 못하는 방해음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모델링 테스트가 반드시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객석과 무대의 거리를 최소화해 관객 모두가 하나가 된 듯한 친밀한 감동을 느끼길 바랐다”며 “관객이 서로 마주 보며 호흡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훌륭한 공연을 함께 경험하고 있다’는 감정을 공유하며 감동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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