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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공원을 품다, 마을회관 광장을 담다
    “마을회관이 광장이 된다면?”   부산광역시 영도. 피난민들의 한과 아픔이 뒤섞인 곳, 혈육을 찾고자 하는 희망이 공존하는 공간. 그런 곳에 지어지는 마을회관이라면 어떤 모습일까?     플로건축사사무소(flo)는 “마을회관이 광장이 된다면?”이라는 물음에서 영도 봉산마을 코워킹스페이스를 설계했다.   회사의 명칭이자 건축물의 기준레벨을 뜻하는 밑바닥(FL±0)에서부터 다시 질문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외부와 내부를 잇고, 그 흐름(FLOW) 속에 마을 주민들의 관계 맺기를 도와주고 싶었다.   지난 14일 성동구 성수동에서 만난 플로 최재원 대표는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공공건축물이 어떤 경계와 흐름을 통해 좋은 공간을 서비스할지 또 고민했다”고 강조했다. 플로는 최 대표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후배들인 오진국, 신요한 대표가 함께 만들었다. 여기에 최 대표와 과거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한 권미리 대표까지 함께하고 있다.   봉산마을 코워킹스페이스는 부산시 영도구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시작됐다. 영도구청에서 발주했던 프로젝트로 마을 중심에 있는 여러집들을 매입해 주민들의 사랑방 그리고 연결통로를 만들어줬다.     “건물이라기보다는 편안하게 와서 쉴 수 있는 공원이자 광장 같은 공간을 노렸습니다. 옆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하고, 그 옆에서는 커피도 마실 수 있고 그런 공간을 기획했습니다.”   최 대표는 설계 취지를 설명하며 “가장 큰 난관이 급격한 경사였다”고 기억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단차를 활용했다. 겉에서 보면 가운데 강당이 있는 큰 마을 광장 같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6층의 거대한 건물이다.   이를 위해 부지 가운데 있는 ‘성당집’(과거 집주인이 성당을 열심히 다녔다고 한다)을 그대로 살렸다. “성당집이 기준이 돼서 전체를 묶어주고 통일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권미리 대표는 설명을 이어갔다.   원래의 ‘성당집’ 1층이 현재의 건물에서는 3층의 역할을 하며 2층은 4층 역할을 한다. ‘성당집’을 중심으로 아래위가 지어졌다. 테라스 하우스 형식의 마을회관이다 보니 각자가 도로에서 바로 이어지는 1층이기도 하다. 시골 노인들은 동네 아랫부분에서 윗부분으로 마실을 나갈 때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한결 이동을 쉽게 할 수 있게 됐다.   신요한 대표는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체가 하나입니다. ‘성당집’ 하나만 살리고 양쪽에 있던 것들을 크게 하나의 판을 만들어서 연결한 셈입니다. 그 판과 판 사이에 주민들이 원하는 시설들을 넣어준 것이지요”라며 건물을 소개했다.   언덕에 있다 보니 조선소와 부산항을 내려다보이는 ‘뷰맛집’이다. 이에 마을주민들이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기존의 ‘성당집’은 카페로, 전망이 가장 좋은 6층은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할 수 있게 배치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작은 바자회도 열고 반상회도 할 수 있게 강당을 설치했다. 각층의 레벨들을 활용해서 아래층을 무대로 만들고 계단은 자연스럽게 객석으로 이용됐다. 뒤로 부산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무대가 생긴 셈이다.   넓은 광장이 생기니 마을 사람들도 자연스레 교류가 많아진다. 이곳에서는 음식을 해서 서로 나눠 먹기도 하고, 부산 국제 영화제가 열릴 때면 스크린을 설치해 배우들의 무대인사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건물의 자재로 옮겨졌다. 마을 주민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보니 세련되고 낯설기보다는 친숙한 자재를 사용하고 싶었다. 여기서 다시 ‘성당집’이 힌트가 됐다.   권미리 대표는 “남아있는 ‘성당집’의 붉을 벽돌에 맞춰 나머지 건물의 외벽을 꾸몄다”면서 “마을 전체의 이미지와도 잘 어우러지고, 새로 지어진 건물이 아닌 원래 있던 건물처럼 보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건물 내부뿐만 아니라 외벽의 조명 역시 신경 썼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회관인 만큼 광장이자 이동통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처마, 마당을 밝히는 조명도 더 많이 사용했다.   건물은 현재 ‘베리베리 봉산센터 마을회관’으로 불린다. 지난해 ‘부산다운 건축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상을 받게 된 데는 ‘어우러짐’을 강조하는 플로의 건축 철학이 적중했다.   최 대표는 “(건축물은)서울 아파트로 비유하면 주민들이 전부 모이는 커뮤니티 센터”라면서 “상을 받을 수 있었던 데는 영도가 가진 환경 그리고 마을의 역사를 잘 유지하면서 그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 적중했다”고 덧붙였다.     주변환경과 잘 어우러진 플로의 작품이라면 ‘마루뜰어린이집’도 빼놓을 수 없다.   세종시 국토연구원의 직장어린이집으로 활용하기 위해 공모전을 연 ‘마루뜰어린이집’은 세종시 반곡동 모개뜰근린공원 안에 위치했다.   이미 조성된 연구원 안에 남는 공간이 없어 부지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지자체 협력을 통해 공원의 일부를 어린이집 부지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직장어린이집이 공원 내에 위치해 있는 것은 국내 최초의 시도다.   최 대표는 “이미 조성된 공원의 일부를 어린이집으로 이용하는 만큼 공원과의 관계가 중요한 숙제였다”면서 “공원의 훼손을 최소화하고 공원과 어린이집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설계 배경을 설명했다.   이를 위해 어린이집과 공원이 분리된 담으로 경계가 만들어지고 서로 등을 맞댄 공간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안전 또한 중요한 만큼 일정 부분 폐쇄적인 공간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담이 아닌 대지의 높이차를 활용한 입체적인 경계를 해법으로 떠올렸다. 3m 가량 높이 차이가 나는 대지의 낮은 쪽을 어린이집의 1층 레벨로 하고 어린이집 옥상을 공원의 산책로에 편입시켰다.   오진국 대표는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깊이에 따른 경계는 어린이들이 울타리에 갇혀 있기보다는 안전하게 자연과 공원을 즐기며 주변을 인식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4개의 보육실은 아이들이 가장 많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이 보육실이 자연 속에 흩어져 있는 집들의 집합으로 인식되길 기대했다. 이동통로를 제외하고 건물의 외부에 보육실을 배치해 3면이 트여 열린 조망과 자연채광이 가능하도록 계획했다. 공원이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왔고, 어린이집이 공원 바깥으로 나간 셈이다.   보육실에는 크게 두 종류의 창을 설치했다. 먼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창들을 계획했다. 다른 하나는 고측창으로 보육실 전반에 자연광을 비출 수 있도록 계획했다.   어린이집의 중심에는 중정이 위치한다. 중정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었다. 여기서도 지형의 높낮이를 활용했다. 별도의 놀이기구를 많이 두기 보다는 높낮이를 활용한 미끄럼틀과 암벽등반, 모래놀이 공간을 배치했다.   최 대표는 “마루뜰어린이집은 건축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그가 소망하는 어린이집의 10년, 20년 후의 모습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아이들이 자라듯 새로 식재된 나무들도 시간을 두고 성장해 공원과 연속된 경계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원과 어린이집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공원 이용자도 산책로를 편안하게 활용하고 아이들도 자연의 풍요로움을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영상 기자 / sang@heraldcorp.com
절벽으로 단절됐던 후암동 마을…‘길’을 내어준 건축물에 사람이 모인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끝자락에는 새로 생긴 ‘길’이 있다. 과거 소월로와 두텁바위로는 평면적으로 가깝지만 절벽으로 단절돼있어 주민들의 이동이 제한적이었다. 15m의 단차로 경계가 명확했던 두 길을 이어준 건 하나의 건축물이었다. 경사로에 자리 잡은 건축물의 외부 계단은 지하 1층부터 지상3층까지 끊김 없이 연결돼 일종의 ‘공공 보행로’ 역할을 한다. 지난해 한국건축문화대상 건축물 민간부문 대상을 수상한 ‘콤포트 서울’의 얘기다.   지난 16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건축사사무소 ‘경계없는작업실’에서 문주호 소장을 만났다. 그는 “콤포트 서울의 부제는 ‘후암소월 1길 1’로, 건축물 자체가 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착안했다”며 “소월로와 두텁바위로를 연결하는 건축물을 지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게 하면 공간의 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콤포트 서울이 사람들이 왕래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건축주의 결심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처음 건축주가 문 소장에게 제안한 것은 “같이 땅부터 찾자”는 것이었다. 함께 적합한 토지를 물색하던 중, 건축주는 소월로를 지나가다 ‘토지 매매’ 현수막을 접했다. 평소 후암동을 좋아했던 건축주는 “마을에 의미있는 건축물을 지어달라”고 의뢰했다. 건물 공사를 시작한 이후엔 사옥이나 대사관으로 쓰기 위한 통임대 문의가 들어왔다. 수익 측면에선 안정적이었지만 건축물이 사유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 거절했다. 현재는 건축주가 카페·전시관·상점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콤포트 서울의 정중앙에는 과감하게 계단이 배치돼있다. 문 소장은 “길이 공간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계단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방문객이 두텁바위로를 통해 1층 계단으로 진입하면 입체적인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건축물에 머물렀던 시선이 마을 풍경으로, 이어 서울 전망으로 옮겨가고 최종적으로 건물의 옥상에 이르게 된다. 옥상은 지역 주민들의 보행 통로로, 방문객들에게는 휴식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콤포트 서울이 2022년 완공된 후 지역 상권도 활기를 띠고 있다. 건물을 찾는 유동 인구가 늘면서 공실이었던 인근 상가도 하나둘씩 카페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문 소장은 “최근 공공성과 상업성은 서로 닮아가고 있다”며 “공공 보행로를 만들면 사람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공간이 살아나 가치가 올라가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마을에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구상했던 것이 실현됐다”며 “가끔 콤포트 서울에 방문하는데, 커피를 마시던 노부부, 쉬어가던 등산객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문 소장은 서울대 건축학과 동기인 임지환, 조성현 공동 창업자와 함께 2013년 경계없는작업실을 만들었다. 그는 “열린 사고를 바탕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싶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경계없는작업실이라 지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2018년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며 업계에 이름을 알렸고, 이듬해에는 각자의 길을 찾아 갈라졌다. 현재 문 소장이 홀로 이끌고 있는 경계없는작업실은 지난 10년간 크고 작은 프로젝트 60건을 수행했다.       문 소장은 ‘가장 의미 있는 건축물’ 중 하나로 첫 번째 프로젝트를 꼽았다. 그에게 가장 먼저 설계를 의뢰한 건축주는 그의 아버지였다. 정년퇴직 후 노후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던 그의 아버지는 전문 지식이 없는 탓에 고민이 많았다.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아파트 관리직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부자가 생각해낸 방법은 건물주가 되어 고정적인 임대 수입을 받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부모님이 거주하던 아파트 한 채를 팔고 정년 퇴직금까지 끌어 모았다.   조성현 공동 대표가 강남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소개시켜주며 프로젝트가 급물살을 탔다. 문 소장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2종 일반주거지역에 위치한 폭 7m, 길이 13m, 면적 113m²의 좁고 긴 땅을 추천받았다. 앞 도로가 끊겨있어 저평가된 땅이었다. 용적률을 확보하기 어려운 땅이었고, 예산이 초과될 수 있어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강남에서 1인 고급 원룸이나 투룸 수요가 급증하는데 물건이 없다”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듣고 매입을 결정했다.   그는 “2010년대 초반 강남은 원룸이나 투룸 등 고급 주거 임대시장이 활성화된 상태였다”며 “압구정, 가로수길, 도산공원 등 강남 일대에 사무실이 많이 생기면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주거 수요가 생겼지만 이를 충족시킬만한 작고 아기자기한 1인 주거상품이 부족했다”고 했다. 이어 “미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독특한 집을 짓고 싶어 처음부터 ‘테트리스 하우스’라고 브랜딩을 하고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가 설계한 ‘테트리스 하우스’는 여러 모양의 초소형주택이 하나로 합쳐진 형태다. 관건은 200%인 용적률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었다. 2차원 평면에서 볼 수 없는 공간을 찾아내 최대한 활용했다. 땅의 긴 부분을 5m 폭으로 이등분하고, 양쪽마다 ‘ㄴ자’ 모양 방에 ‘ㄱ자’ 모양 방을 겹쳐놓았다. 마치 테트리스처럼 위·아래 방을 수직으로 합쳐 큐브 형태로 구성했다.   문 소장은 14㎡크기의 원룸 10개를 만들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여러 형태의 테트리스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층고도 2.2m에서 4m로 입체적이다. 계단을 돌림 모양으로 내고 각 방을 반 층마다 배치해 서로 입구가 마주 보지 않도록 배려했다. 지하 1층과 꼭대기 6층에는 사무실도 들였다. 그는 “구조가 복잡해 예상했던 것보다 공사비가 1.5배 이상 들었지만 결과물이 만족스러웠다”고 밝혔다.   그는 “건물이 완공된 후 종종 효자라는 얘기를 듣는다”며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의 ‘노후 자금’ 역할을 하는 테트리스 하우스는 완공 후 세입자를 들여 12%의 수익률을 냈다. 그는 “이후 부동산 개발업자가 찾아와 테트리스 하우스를 콘셉트로 건물을 지어달라고 했고, 실제로 3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테트리스 하우스는 2016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용적률 게임’의 대표작으로 선정돼 전시되기도 했다.         문 소장이 최근 설계한 건축물 중 하나는 ‘더아크70’이다. 충남 홍성군 홍성산업단지 내에 설립한 벽산 홍성공장의 커뮤니티 센터다. 202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벽산의 미래 기업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공장 본사를 지어달라는 것이 건축주의 주문이었다”며 “물류 시스템이 중심이 되는 공장 지대에 공장 본사·연구 시설·기숙사 등을 작은 마을처럼 구성했다”고 밝혔다.   그는 박공형 매스를 겹친 듯한 형태를 설계했다.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입체적인 단면을 갖추고 있다. 사무 근로자와 공장 근무자가 각각 다른 업무 시간에 일한다는 점을 고려해 1층은 공장서비스공간으로, 2층은 사무공간으로 공간을 구분했다. 1층과 2층을 비틀어 각각 외부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한 지점에서는 만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분리와 연결이 자유로운 가변적인 공간으로 모든 직원들이 함께 교류할 수 있는 통합 공간을 확보했다.   외관 자재도 차별화했다. 벽산에서 생산하는 베이스 패널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건축가들이 애용하던 자재였다. 하지만 색감 차이, 불균질한 질감, 가격 상승 등으로 시장에서 외면받게 됐다. 문 소장은 베이스 패널이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물성을 살려 재창조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연구원과 함께 베이스 페널의 색·표면·질감 처리 방식을 실험한 끝에 본연의 장점을 살려 건축물에 적용했다. 벽산은 새로운 베이스 페널을 상품화해 적극 홍보하고 있다.
반포 노후 주택단지 붉은 벽돌집, 무채색 도시를 밝히다
  네모반듯한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로 가득찬 반포동 일대 노후 주택 밀집지역에 계단 형태를 띤 붉은 벽돌집이 눈에 띈다. 붉은 요새를 뜻하는 레드 포트리스(Red Fortress)는 ‘오래도록 변치 않는 건물이었으면 한다’는 건축주의 희망이 고스란히 담겼다. 233㎡(약 70평) 규모 대지에 올라선 5층짜리 벽돌집은 7년차 건축 아뜰리에 ‘더코너즈(THE CORNERZ) 건축사사무소’를 거쳐 탄생했다. 지난 20일 홍종화·최경철 더코너즈 건축사사무소 공동소장을 만나 레드 포트리스에 담긴 가치, 설계 과정 등을 전해 들었다.   홍 소장은 “반포동 일대를 보면 강남대로변은 휘황찬란한 상업적 건물들이 많지만, 거대한 도로 사이에 껴 있는 블록들은 무채색에 방치된 듯한 노후 주택들이 가득하다”며 “그곳에 저희가 새로운 활력을 넣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레드 포트리스가 만들어지기 전 해당 부지에는 타일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최 소장은 “타일은 탈락이 되거나 훼손될 일이 많다”며 “그래서인지 건축주가 타일보다 오래갈 수 있는 단단한 물성을 갖는 재료를 원했다. 그렇게 붉은 벽돌을 재료로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통상 다세대 주택을 비롯한 공동주택을 만들 때에는 정북 방향의 일조권 사선제한(정북일조)이 적용된다. 머릿속에 다세대 주택을 떠올리면 일률적인 주택 이미지가 연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오히려 정북일조가 더코너즈건축사사무소에게는 새로운 기회이자 힌트가 됐다고 말한다. 홍 소장은 “반포동 일대 대부분의 건물들이 위로 올라갈수록 사선 형태를 띤다”며 “기형적 도시 형상을 만드는 법적 사항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고민이었다. 저희는 사선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반듯한 형상으로 층마다 건물이 밀려 나가는 식이라면 그 앞에 남겨진 공간을 주택 거주자에게 외부 공간으로 내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근린생활시설인 지하 1층~1층, 주택인 2층~5층 모두 층마다 두 소장의 세심한 고민이 묻어났다. 홍 소장은 “모든 층마다 장점이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하 1층은 보통 어두워서 임대가 잘 안나가고 임대료도 낮은 편인데 개방형 지하(선큰) 구조를 통해 밝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이어 “1층에도 자투리 공간을 정원으로 만들고, 2층~5층은 각 층마다 야외 테라스를 설치했다”며 “각 층마다 다른 이야기가 있고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작업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설계, 건축 과정을 통해 더코너즈건축사사무소는 레드 포트리스 준공 이후에도 건축주, 시공사와 매달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됐다. 그만큼 ‘합’이 좋았다는 뜻이다. 홍 소장은 “건축주, 시공사, 설계사가 한 뜻이 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지금까지 작업한 프로젝트 중 유일하게 레드 포트리스가 삼위일체됐던 작업”이라며 “보통 건물이 지어지는 데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간이 길기 때문에 과정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레드 포트리스는 올해 서초구청으로부터 ‘서초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 소장은 “보통 건축상이라고 하면 규모가 큰 건물, 문화시설 등이 많이 수상하게 된다”며 “레드 포트리스는 다세대 건축이라는 점에서 수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작은 건물은 여지가 없다”며 “서초, 강남 등의 기본적 필지 규모가 231㎡(70평) 내외이고 다세대 주택은 정주 공간이라 규격화된 사이즈가 정해져 있어 건축가의 의도를 갖고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힘들다. 그럼에도 시 요구사항, 건축주 요구사항을 모두 반영해 하나의 이야기로 끌고 나간 점을 높게 평가해주신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 임대아파트 단지 내 관리동을 도서관으로 탈바꿈시킨 ‘여행도서관’도 더코너즈건축사사무소를 대표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지하는 기계 전기실, 1층은 경로당과 관리사무소, 2층은 폐업해 방치된 독서실이 있던 관리동을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했다. 홍 소장은 “서울시,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여러 주체가 참여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여행 도서관은 8개의 날개 형상을 한 타공패널이 건물을 감싸는 형태”라며 “마치 떠다니는 종이배의 돛 같기도 하고, 이제 막 꽃을 피우려 하는 꽃봉우리처럼 만들어 희망과 꿈을 가진 공간으로 변신시키자는 의도를 담았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형태적 모호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며 “각자마다 같은 형태를 보고도 다른 걸 상상하게 되는데 건축이 갖고 있는 그러한 묘미를 담은 건축물”이라고 말했다.   더코너즈건축사사무소는 도서관, 학교, 놀이터 등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 공모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 최 소장은 “공공 프로젝트를 하면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많은 시민을 위한 공간을 만들게 되는데 그 안에서 다양한 건축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고 했다. 홍 소장 또한 “공공 프로젝트는 건축가에게 공공적 성격을 다룰 수 있는 기회, 안정적으로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 경쟁을 통한 자기 발전의 기회를 준다”며 “사무소에 일이 많이 들어오게 되면 자기 복제를 많이들 하게 된다. 공공 프로젝트는 경쟁을 통해 디자인 역량을 확인하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민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더라도 ‘공공성’을 염두에 둔다는 설명이다. 홍 소장은 “단순히 사무소를 운영하기 위한 설계비를 벌기 위해 건축을 하는 게 아니라 도시와 건축을 위해 건축가들이 해야할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있다고 본다”며 “저희와 생각이 비슷한 건축주분들과 작업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의 건물로 인해 이 동네 혹은 도시가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과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   더 나은 동네,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더코너즈건축사사무소가 추구하는 건축 철학은 ‘모든 관계를 환대하는 건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홍 소장은 “코너 즉, 모서리가 만들어지려면 서로 다른 방향의 것들이 모여 만나야 한다. 건축 또한 서로 다른 관계의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더코너즈는 관계의 접점에서 어떤 자세로 작업을 해야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을 위한 영감도 그 공간을 사용해야 할 사람으로부터 얻는다. 홍 소장은 “건축은 갑자기 건물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곳에 살아야 할 사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며 “저는 항상 사람의 행동, 행위 등 사람 관찰을 통해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더불어 최 소장은 “사회 현상도 중요히 여기는 요인 중 하나”라며 “사회가 달라지면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고 건축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 부분들을 면밀히 보려고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무소를 이끌어가고 있는 두 소장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축가’, ‘의도가 잘 담긴 공간을 구현하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홍 소장은 “젊은 건축가인 저희가 어떤 건축가로 남고 싶다고 섣불리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면서도 “건물을 봤을 때 ‘예쁘다’는 반응보다는 ‘왜 이렇게 지어졌는지 알 것 같아’, ‘더코너즈가 작업한 건축물같네’ 이런 반응을 듣고 싶다. 색깔이 분명히 있고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축을 하고 싶다”고 했다.   최 소장은 “레드 포트리스에도 각각의 층마다 다른 이야기들이 있고 그런 부분이 거주하는 분들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며 “그런 측면에서 건축의 의도가 섬세하게 곳곳에 담긴 건물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신혜원 기자 / hwshin@heraldcorp.com 원문가기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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