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한 아파트 숲이 내려다 보고, 네모난 빌딩들이 에워싼 공원 안. ‘나 홀로’ 유연하게 흘러내리는 곡선의 건축물이 자리했다. ‘직선의 신도시’ 안에 들어선 이곳은 ‘마곡의 신스틸러’다. 가면도 여러 개다. 보는 방향에 따라 얼굴이 달라지니, 곳곳이 ‘SNS 성지’가 됐다. 발산역과 마곡역 사이, 산업단지와 마곡의 ‘MZ세대’들이 모인다는 ‘먹자골목’ 사이에 들어선 스페이스K 서울이다.
8298㎡의 대지 안에 세워진 스페이스K 서울은 규모(2044㎡)로만 치면 공원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거대하면서도 우아한 조형물처럼 보이는 이곳은 서울 서남부 지역의 첫 공공미술관이다.
곡선으로 풀어낸 동선...4개의 언덕과 3개의 호(arc)
스페이스K가 자리한 공원은 정해진 입구가 없다. 어느 곳으로도 들어올 수 있고, 사방으로 나갈 수도 있다. 어디에서 들어서도 미술관을 만나게 되고, 미술관을 가로질러도, 벽면을 따라 걸어도,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도 저마다의 목적지로 향할 수 있다. 미술관 공원 녹지의 북쪽으로는 서울 식물원과 연결되는 길이 있고, 동쪽으로는 5호선 지하철 노선 형태의 곡선형 녹지 보행로가 맞닿아 있다. 애초 평평한 대지 위에 우뚝 솟아야 했지만, 스페이스K는 그것 스스로 ‘공원의 일부’가 됐다. 설계 당시 미술관이 들어설 공원 대지에 네 개의 완만한 언덕을 만들었던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세 개의 언덕은 흙을 쌓아 올려 잔디와 나무를 심었다. 그와 어우러진 네 번째 언덕은 미술관이다. 네 개의 언덕 사이사이는 마곡 신도시의 곳곳으로 연결된다.
강 소장은 “미술관이 도시적 공공 녹지 동선의 결절점 기능을 해야 한다는 잠재성을 발견했다”며 “공원을 따라 걷는 시민의 동선을 최대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곡선으로 풀어냈다”고 말했다. 미술관의 기능은 조형성을 결정하는 ‘실마리’가 됐다. 사람들의 동선에서 ‘호(arc)’를 차용해 미술관의 평면, 입면, 단면 등 총 세 개의 호로 확장했다.
‘평면의 호(arc)’는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미술관의 곡면벽이다. 이 곡면이 전시장의 전시벽이 돼 미술관에 공간감을 주고 있다. ‘입면의 호(arc)’는 미술관 입구로는 약 27m에 달하는 아치형의 개구부와 이 개구부를 지지하는 상부 경사 보행 구조물로 발전했다. 강 소장은 “한쪽에서는 계단으로, 반대쪽에서는 완만한 램프 보행로로 활용, 옥상 정원으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됐다”고 말했다. ‘단면의 호(arc)’는 옥상정원이 북쪽으로 갈수록 점차 높아지는 경사형 단면 구조를 이룬다. 전시장에서도 천정이 점차 높아졌다는 장점을 가져왔다.
세 개의 호는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스페이스K 서울을 보느냐에 따라 첫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도로에서 보면 날렵한 직선이 치솟은 성냥갑 건물이지만, 공원에서 볼 때 유려한 곡선을 가진 타원형으로 보인다. 직선에서 곡선으로 떨어지는 건축물의 높이가 달라지는 것도 재밌는 디자인 요소다. 매스스터디스에 따르면 스페이스K 북쪽의 직사각형 입면은 11m이고, 남서쪽의 곡면 입면은 11m에서 시작해 약 5m까지 높이가 점차 낮아진다. 스페이스K가 하나의 건축물을 넘어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품게 하는 특징이다.
강 소장은 “도시를 향한 입면은 직벽으로, 공원을 향한 입면은 곡면으로 계획했다. 대조적인 그러나 일관성 있는 태도를 통해 의도적인 조형성이 드러날 것을 기대했다”며 “입체적인 볼륨으로서뿐 아니라, 건물의 입면이 가지는 평면적 요소가 또한 미술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곳곳이 포토존...‘열린 공간’, 도시의 일부이자 공원의 연장
스페이스K 서울 곳곳엔 ‘보물찾기’를 하듯 발견되는 숨은 명소가 많다. 미술관을 따라 걷다 보면 타원형의 아치 안에 숨은 계단을 만난다. 강 소장은 “계단과 외벽의 관계는 단순한 결정사항이 아니었다”며 “이 계단은 용도와 조형적 외관을 도출하려는 의도를 입체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스터디를 진행한 결과였다”고 말했다.
“공원에서 미술관 지붕으로 쉽게 접근하는 동선의 역할”이자, “미술관 입구로 최대한 높고 넓게 열리도록 한 용도”다. 지금은 용도 이상의 효과를 만나고 있다. 바로 여기가 요즘 SNS에서 ‘핫’한 일종의 ‘포토존’이다. ‘비밀의 문’ 같은 아치와 그 위로 새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찍은 사진들이 인스타그램에도 수없이 올라오고 있다. 인증샷 필수 구역인 셈이다.
스페이스K 서울의 등장은 마곡의 얼굴을 바꿔놨다. 성냥갑 모양의 건물들이 규칙적으로 들어선 마곡산업단지에서 스페이스K 서울은 눈에 띄는 건축물이면서도 신도시는 물론 자연과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열린 공간’이라는 점이다. 스페이스K 서울의 출발점 자체가 보통의 미술관과 달라 나타난 결과다. 강 소장은 “통상적으로 미술관은 전시의 기능으로 인해 폐쇄적인 공간구조를 보이지만, 스페이스K 서울은 개방된 공원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쉽게 들를 수 있고, 머물다 갈 수 있는 ‘만인의 공간’을 지향한 것이다. 푸릇한 잔디에서 이어지는 미술관, 공원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경사로, 경사에서 이어지는 미술관의 옥상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닫는 모든 곳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닌 도시의 일부이자, 공원의 연장처럼 느껴진다.
강 소장은 “미술관이 공원의 일부를 쓰고 있지만, 공원의 일부로서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했다”며 “이곳이 자연과 더불어 문화를 매개로 한 도시 촉매 역할을 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스페이스K 서울은 2020년 9월 개관 이후 약 5만여 명이 찾고 있다. 고승희 기자
고승희 기자 /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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