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엔 너도 나도 ‘롱패딩’
By 홍연진 (스토리텔러)
추워지는 날씨만큼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외투도 두꺼워지고 있다. 올 겨울 패션업계에서 눈에 띄는 현상은 바로 ‘롱패딩 열풍’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학교 내에서 일명 ‘돕바’를 입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브랜드 롱패딩을 입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롱패딩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일부 브랜드에서만 소량 판매했다. 하지만 올해는 행인의 절반이 롱패딩을 입고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각 브랜드에서도 경쟁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상당히 저렴해진 가격도 인상적인 부분이다. 과거에는 등산복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100만원 상당의 고가 패딩점퍼가 유행이었지만, 올해는 SPA 브랜드를 중심으로 10만원에서 20만원까지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의 패딩점퍼가 인기를 얻고 있다. 롱패딩은 골반 정도까지 오는 길이의 일반적인 패딩보다 더 많은 옷감과 충전재를 필요로 한다.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은 더 높은 가격대를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일반 패딩보다도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되자 하나쯤 장만해두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공식 온라인 스토어>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굿즈로 선보인 ‘평창 롱패딩’은 가성비 높은 제품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완판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평창 롱패딩은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롯데백화점이 작년 9월 신성통상㈜에 발주해서 만든 제품이다. 14만 9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거위털 충전재를 사용하여 가벼우면서도 보온성이 우수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패딩의 경우 오리털보다 거위털 제품이 훨씬 비싸며, 충전재에서 솜털 함유비율이 깃털보다 높을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평창 롱패딩은 거위 솜털이 충전재의 80%를 차지한다. 유사한 조건의 타 브랜드 제품은 30만원~5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평창 롱패딩이 얼마나 가성비 뛰어난 제품인지 알 수 있다.
현재 온라인 스토어와 롯데백화점에서는 초기에 기획한 3만 장 중 대부분이 소진된 상태며, 일부 사이즈 및 색상은 재고가 없다. 오는 22일에 판매를 재개하면서 수량이 부족한 만큼 1인당 1개로 구매 수량을 제한했다.
<사진=CJmall>
지난 20일에는 유명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가 CJ오쇼핑에 출연해 '블랙 롱패딩'을 판매했다. 판매한 제품은 셀렙샵의 컬처브랜드 '씨이앤(Ce&)'이 고태용 디자이너와 협업한 '씨이앤 태용(Ce& Tae Yong)'의 슈퍼 롱패딩이다. 슈퍼주니어는 제품 소개와 모델링은 물론, 성대모사와 모창 등 개인기까지 총동원해 판매에 나섰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진 방송에서 뛰어난 예능감을 선보이며 준비한 수량인 2만 장을 1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내에 모두 판매했다. 이처럼 롱패딩은 홈쇼핑 상품으로 등장하여 완판 기록을 세울 정도로 인기 있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롱패딩이 갑자기 유행 아이템으로 등극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상청은 올 겨울이 라니냐 현상으로 인해 더 춥고, 건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 계절 먼저 상품을 준비하는 패션업계는 이 소식을 듣고, 작년부터 유행 조짐이 보였던 롱패딩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패딩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는 백화점에서 여러 브랜드를 살펴보면서 여느 때와는 달리 롱패딩을 전면에 광고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올 겨울이 작년보다 추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뛰어난 보온성을 자랑하는 롱패딩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사진=푸마 공식 온라인 스토어>
연예인 효과도 이유로 들 수 있다. 연예인들은 겨울철 활동 중 이동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때 롱패딩을 자주 입곤 한다. 최근에는 음악 프로그램의 출근길, 퇴근길을 촬영한 기사나 드라마, 영화의 비하인드 영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이 입은 제품이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가 일반인들에게 정보가 알려지면서 유행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롱패딩을 검색했을 때, 연관 검색어에 특정 연예인의 이름이 함께 뜨기도 한다. ‘푸마 FD Striker Long Down’의 경우 유명 아이돌 그룹인 ‘방탄소년단’이 화보를 찍으면서 유명세를 탔다.
마지막으로 롱패딩은 길이가 길어 안에 입은 옷이 모두 가려진다는 점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대학생의 경우 경제적 여건상 매일 다른 옷을 입기 힘들고, 과제와 시험이 겹칠 때는 외모에 신경을 쓰기 어렵다. 롱패딩은 신발과 가방에만 포인트를 주면 되기 때문에 코디를 할 때 스트레스가 훨씬 덜하다. 또 라인을 잡아 깔끔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제품은 일반 패딩을 입었을 때보다 코디에 좀 더 신경을 쓴 느낌을 준다. 롱패딩은 대학생 사이에서 교복으로 통하는 ‘돕바’에서 한층 더 발전하여 보온성, 편리성, 디자인을 모두 잡은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롱패딩 효과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등산복 브랜드에서 선보인 패딩점퍼의 유행이 그리 오래가지 못했던 것처럼 롱패딩도 곧 내리막길을 걷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또 20대뿐만 아니라 청소년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면서 과거 ‘등골 브레이커’ 현상이 재연될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다양한 SPA 브랜드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출시하고 있지만, 일부 브랜드에서는 100만원을 호가하는 제품도 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평창 롱패딩이 유행하면서 그 기세가 한풀 꺾인 느낌이다. 패션업계에서는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제품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체적인 규제를 할 필요가 있으며, 무분별한 경쟁과 마케팅도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