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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분해만 100만년 폐유리로 만든 이 건물…친환경건축 예쁘기도 합니다
202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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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디자인과 친환경. 과거 건축업계에서는 이 두 단어는 서로 양극단에 선 가치로 여겨졌다. 소위 ‘예쁘기만 한’ 건축물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이 따라붙었다. 반면 화석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건축물은 밋밋하고 못생겨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편견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건강하면서도 아름다운 집을 구현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탄소중립이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대세는 분명해졌다. 친환경 건축 또한 기호가 아닌,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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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부터 ‘한국형 패시브 하우스’를 설파해온 최정만 자림이엔씨건축사사무소 대표(패시브하우스건축협회장)를 만나 ‘패시브(Passive·에너지 낭비를 최소화)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패시브 건축은 환경·건강 면에서 강점이 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입지가 좁고 디자인·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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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5년 전부터 패시브 건축 분야에 몸담은 최 대표는 “디자인을 지향하는 흐름이 주류지만, ‘내가 지금 설계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환경 파괴로) 죄를 짓고 있구나’ 이런 감정을 느끼며 패시브 건축 분야에 뛰어들었다”며 “이제 디자인만 찾는 시대는 아니고, 건축도 과학”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디자인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는 극단론보다는, 지구를 위한 건축과 디자인의 중간 다리를 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누군가는 저에너지 건축물을 알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건축주들 사이에서도 디자인과 환경을 함께 추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2021 대한민국녹색건축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판교 운중동 주택이 대표 사례다. 건축주는 평소 관심사에 따라 가족과 사회를 위한 ‘건강한 친환경 주택’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구조부터 외장까지 목재를 사용한 친환경적 건축을 구현했다. 한국 최초의 ‘오픈 조인트(목재와 목재 사이를 띄워 시공) 천연목재 제로에너지주택’이다.

 

집은 건축주가 원하는 공간과 대지의 사이즈 및 형태, 패시브 하우스의 구현이 합쳐져 외피 면적을 최소화하면서 대지를 최대한 활용해 지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형태의 단순함을 보완하기 위해 외장재는 아무런 화학 처리를 하지 않은 이페목을 오픈 조인트 천연 목재로 구성해 깊이감을 선보였다고 한다. 남향으로 채광이 극대화된 창을 배치했고 고단열, 고기밀, 고성능 창호, 열교환환기장치 등을 통해 쾌적한 실내환경을 구현했다.

 

특히 건축주는 밖으로 창이 최대한 많은 열린 구조를 선호했는데, 패시브 하우스에서 요구하는 ‘남측면 창은 넓을수록 유리하다’는 점과 맞아떨어져 우회 방안을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고 한다. 방마다 열리는 창은 두 개씩 설치해 자연 환기 시 기류가 원활히 흐르도록 했다. 완성된 주택은 심플하고 현대미가 물씬 느껴지면서도 나무 소재가 주는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특징이다. 녹색 건축에서 요구하는 많은 요소를 적극 반영하면서도 고아한 매력을 살렸다. 최 대표는 “특히 이 집에 사용된 나무는 10년, 15년이 지나면 색이 서서히 빠지며 은회색 빛을 띠어 ‘아름다운 백발’처럼 변한다”며 “집주인과 함께 곱게 늙는 집으로 디자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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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창동 주택도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향한 비슷한 사례다. 이곳은 건축주가 과거 아파트에 살 때, 보수를 위해 벽을 뜯었다가 벽속이 새까맣게 곰팡이로 뒤덮인 모습을 보고 속까지 깨끗한 단독주택을 짓고자 한 마음에서 태어난 결과물이다. 결로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 쾌적한 친환경 소재와 더불어 저에너지 패시브 기법, 전기차와 각종 사물인터넷(IoT) 활용을 고려한 태양광 패널을 적용했다. 특히 실내공간을 최대한 한곳으로 엮어 햇빛이 집안 곳곳에 들어오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3대가 사는 이곳은 두 집으로 나뉘어 부모님, 두 형제의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구성됐는데, 세련되고 햇살 가득한 구조는 ‘태양광 패널이 있는 집은 못생겼다’는 편견을 산산조각 낸다. 최 대표는 “기존 관공서처럼 외부에서 태양광이 보이게 하는 게 아니고, 밖에서는 안 보이게 설치해 무선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형태”라며 “요새는 건축주들이 대부분 패시브 건축 기술을 선호하면서도 미(美)에 관한 취향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로 에너지 건축물은 못생겼다고들 했는데, 소재 등이 다양해지며 편견을 깨는 것”이라며 “특히 젊은 건축사들이 패시브 제로 에너지 교육을 받으며 (기술과 디자인을 모두 잡는)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 앞으로 점점 더 멋진 친환경 건축물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요즘과 같이 에너지가 비싼 시대에는 패시브 건축물이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도 오히려 경제성이 좋아질 수 있다”며 “에너지는 적게 쓰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찾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했다.

 

판교 판교동 주택도 곰팡이 등이 생기지 않는 쾌적한 실내 환경에 집중한 집이다.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한 집을 원하는 건축주의 의도에 맞춰, 아이에게 전혀 자극이 없는 자재와 열·공기질 등 실내 환경에 심혈을 기울였다. 최 대표는 “패시브하우스 인증을 받으며 모든 열 교부위를 검토했고, 집안 어느 곳도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설계해 그야말로 건강한 아름다움을 집약한 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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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는 주택뿐만 아니라, 다른 건축물에도 최대한 친환경 요소를 적용한 소재와 디자인을 내세우고 있다. 최 대표는 “가급적이면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자는 목표에 맞춰, 땅에 묻히면 수십년 내에 빠르게 썩을 수 있는 소재들”이라고 부연했다.

 

아산시 ‘어린이 청소년 도서관’은 어린이들을 위한 친환경 소재와 발랄한 내부 디자인이 특징인 곳이다. 최 대표는 “패시브 건축물 인증을 받은 최초의 어린이 청소년도서관”이라며 “도서관이라는 용도에 맞추어 환경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 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이 도서관에 외장으로 사용된 패널은 폐유리를 녹여서 발포한 패널로, ‘100% 재활용 가능’ 자재다. 건물의 수명이 끝난 다음에도 다시 재활용이 가능해, 환경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 소재를 택했다.

 

특히 폐유리를 재활용한 소재인 만큼, 햇빛을 받으면 반사돼 아름다운 색 변화가 두드러진다. 최 대표는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인 만큼 건물 자체가 교육적인 성격을 갖춘 디자인이 된 것”이라며 “멀리서 볼 때는 검정색으로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해가 비출 때 좀 더 맑은 색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건물에는 빗물을 다시 사용하는 시설도 포함돼 있고, 미관을 고려해 태양광 패널은 옥상 내에 낮게 설치했다. 내부는 밝은 느낌을 주는 포인트 디자인으로 친근함을 더했다. 아울러 친환경 소재를 채택해 ‘새 건물’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등이 전혀 없다. 최 대표는 “어린이들이 쓰는 만큼 바닥, 벽, 천장 모두 친환경 소재를 적용했고, 따뜻하고 안락한 포인트 컬러를 적용했다”고 부연했다.

 

‘나주시스포츠컴플렉스’는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의 유일한 스포츠시설의 위상을 나타내는 강렬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건축주는 건물의 용도를 넘어서 지역의 명소가 되길 원했다고 한다. 이에 입구에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붉은색을 채택하고, 대형 카페는 자연 질감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최 대표는 “에너지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업시설이기에, 처음부터 운영비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저에너지 건축물로 계획됐다”며 “건물 측면에 사용된 판넬 등도 모두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 목재 등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포인트가 되는 디자인을 곳곳에 적용했다. 건물을 전면에서 보면 불규칙하면서도 수직으로 떨어지는 LED 조명의 배치가 돋보인다. 최 대표는 “이곳이 ‘빛가람혁신도시’ 내에 있는 만큼, 마치 유성이 떨어지는 느낌을 주는 조명도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지붕 전체가 태양광 패널로 덮인 원반 모양의 ‘애플 신사옥’처럼, 국내에도 친환경 기법과 독특한 디자인이 결합된 상징적인 대형 건축물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그는 “스티브 잡스 생전 당시, 현재 애플 신사옥 설계 디자인은 제로 에너지가 가능해 선정됐다고 한다”며 “해외 건축업계는 확실히 디자인만 얘기하지 않는다. 특히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이 아니면 수출도 어려운 만큼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국내에서도 글로벌 감각에 맞춰 나가길 희망해 본다”고 전했다.

 

고은결 기자 / k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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