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랩(Z_Lab)은 토털 디자인 회사를 지향한다. 의뢰인의 요청으로 건물을 짓는 기존 건축사의 한계를 넘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건축물의 내부를 감성으로 채우는 업무까지 맡고자 한다. 건축 설계는 물론, 내부 인테리어와 가구, 전자제품, 식기, 공간에 어울리는 향까지도 조향사와 협업해 방향성을 제시한다.
지난 13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지랩 사무실에서 만난 강해천 지랩 대표는 “공간에도 명확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랩은 강 대표와 성균관대 건축학과 동문인 3인이 대표를 맡고 있다. 노경록 대표, 강해천 대표, 박중현 대표가 그들이다.
강 대표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과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디자인과 명확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아직 이와 같은 디자인 회사가 없다는 생각에 우리들이 직접 회사를 만들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회사의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이런 평소의 소신에 건축주가 찾아와 인테리어는 알아서 할 테니 건물만 지어달라는 요청에 지랩은 거절의사를 명확히 한다. 정체성을 담아 하나의 일관성 있는 디자인으로 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랩은 의뢰인에게 부지 면적과 장소 그리고 용도를 확인한 후 첫 프리젠테이션까지 1~2달의 시간을 갖는다. 일반 건축 사무소들이 통상 1~2주 걸리는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이다. 그들은 이 기간을 토론과 리서치에 집중하며 첫 아이디어 PT에서 건축물의 컨셉을 제시하기 위해 활용한다. 첫 만남에는 평면도조차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기획단계부터 심혈을 기울여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고 강 대표는 소개했다.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브리드 호텔 양양’이다. 한화 호텔앤드리조트에서 소유하고 있는 호텔은 우리나라 서핑의 성지인 양양 죽도해수욕장과 인구해수욕장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 기획부터 서핑이라는 주제로 모든 디자인을 풀기 위해 서점에 가서 서핑 서적부터 뒤졌다고 한다. 건축물에 서퍼들의 문화와 정신을 깃들게 하기 위함이다.
외관은 노출콘크리트에 골강판을 대서 물결무늬를 만들었다. 죽도 화강암의 색상과 바다의 파도를 담기 위해서였다.
실내 디자인은 서퍼들의 자연친화적인 정신을 담은 ‘서프쉑 (surf shack)’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투박한 나무와 흙의 색상을 주재료로 사용해 디자인했다. 대형호텔임에도 바닥을 매끈한 대리석이 아닌 잘게 잘려있는 석재타일을 사용했고, 일부 벽면은 까맣게 태워서 만든 탄화목 등을 넣었다. 로비에 있는 서핑보드도 실제 보드 디자이너들을 찾아가 컨셉을 주며 맞춤 제작했다.
일반적인 호텔들과 다르게 저층부를 다양한 이벤트를 열 수 있도록 광장의 형태로 디자인하고, 1층에 입점하는 서핑샵을 직접 찾아 입점시키는 머천다이져(merchandiser) 역할까지 도맡았다.
강 소장은 “건축주가 대기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가의 의견을 많은 부분 반영해줘 재밌는 작업이었다”며 “서퍼들의 성지를 만들어보자는 생각뿐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상층부의 객실은 8가지 타입으로 만들어 서핑 문화를 즐기고자 하는 다양한 타겟을 고려했다. 1인실부터 8인실까지 구성했다. 친구들끼리 서핑을 즐기러 왔지만 잠자리에 들 때는 독립된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착안해 1인용 침대를 동굴 같은 공간에 넣은 객실도 만들었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여행이 급감하자 국내 숙박시설을 찾는 수요가 많아졌다. 제주도에서 여러 작품을 선보인 지랩의 ‘스테이’는 단순히 하룻밤을 머무른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게 해준다. 스테이는 지랩이 만드는 민박이나 호텔을 포함하는 모든 숙소들을 총칭해서 일컫는 말이다.
제주도 한림읍 명월리에 위치한 단독 스테이 ‘잔월’은 2021년 제주건축문화대상 대상과 202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잔월이 위치한 명월리는 제주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400~500년 된 팽나무 군락지와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명월성지와 명월대가 남아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건축 부지 안에서 자생적으로 자라고 있던 팽나무와 푸조나무 등 제법 큰 나무들을 보고 강 소장은 마을의 수호신처럼 느껴졌다. 나무들을 베어내지 않고 존중해가며 집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는 나무를 피해서 사이사이에 건물을 앉혔습니다. 외관은 거칠게 마감하고 나지막한 지붕으로 덮어서 원래의 마을 풍경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데 신중을 기했습니다. 정형화되지 않은 대지의 형태와 주변의 현무암으로 이뤄진 돌담들은 오래전에 집 주변에 밭을 두던 마을의 형태 그대로 뒀습니다.”
나무를 피해 집을 만든 탓에 잔월의 지붕은 군데군데 찌그러진 모양이다. 수십년전부터 이 마을에 있었던 건물처럼 보이기 위해, 다른 집들과의 이질감을 피하기 위해 건물 외부에 골재와 시멘트를 바른 뒤 종석뜯기 공법을 사용했다. 말끔한 시멘트를 긁어내서 속에 있는 자갈 등을 외부로 노출시킴으로써 마모된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깨끗한 신발에 상처를 내서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이탈리아 명품 신발브랜드 ‘골든구스’를 연상케 한다.
본래 제주도 집들의 특색을 살리는데도 집중했다. 바람이 심한 제주도는 집이 낮고 지붕의 경사가 완만해 지붕의 면적이 넓다. 담장으로 바람을 가려주고 지붕위로 바람이 지나가게 하기 위함이다. 지붕이 커서 벽과 지붕 비율이 거의 1대 1에 가깝다. 그래서 잔월 역시 돌담 밖에서 집안을 봤을 때는 거의 집의 지붕만 보인다.
강 소장은 “그 안의 모든 프로그램과 경험은 마을의 유래와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명월’과 ‘풍류’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며 “고재로 대청마루를 만들어 다도를 즐기게 하고, 침실에서는 천창과 낮은 창을 통해 나무의 뿌리와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쉴 수 있게 했다. 노천탕을 만들어 청명한 바람과 밝은 달을 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전통가옥들의 리모델링 열풍에 대해서도 한마디 거들었다. “요즘은 이미 한옥이나 전통 가옥 등의 이미지들이 SNS를 통해서 너무 많이 소모되고 재생산 되어서 한옥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기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가구나 조명 디자인이 공간의 특성을 담아야 됨은 물론이고, 공간의 향을 디자인하거나 소품의 재료나 질감 등을 통해 경험디자인 까지 끌고 가야 하나의 공간이 여러 사람에게 충분히 공감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영상 기자 / s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