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은 전통과 근현대를 아울러 놀라운 장인정신이 담겨 있어요. 무언가 작업을 할 때에도 완벽함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이고, 완성된 작품은 결점을 찾아볼 수 없죠. 늘 경외감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미국 앨라배마 주에 위치한 버밍엄 미술관은 남부 지역 최대 규모인 205점의 한국미술을 소장하고 있다. 최근 한국국제교류재단 해외 뮤지엄 어셈블리 참석차 한국을 찾은 그레이엄 보처(Graham Boettcher) 버밍엄 미술관 관장은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미술을 관람하려면 뉴욕 시카고 등 대도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버밍엄 미술관은 1951년 설립, 미국 남북전쟁 이후 철강업이 주요 산업으로 자리잡은 앨라배마의 지역적 특징을 담은 예술을 장려하고 있다. 버밍엄 미술관이 한국미술을 소개해온 역사가 길다. 1982년 도예가 노경조의 전시를 시작으로 별도로 마련된 한국관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 전통미술에서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부처 동상은 앨라배마 주를 상징하는 주요 소재를 사용, 지역민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서고 있다.
보처 관장은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많은 미국 사람들이 K팝이나 드라마, 영화를 통로 삼아 한국미술을 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 대부의 딸이 열여섯 생일에 가장 받고 싶은 선물로 한국 여행을 꼽았어요. K팝의 팬이거든요. 생일을 맞아 한국에 와서 좋아하는 K팝을 즐기고, 이를 통해 한국미술, 역사, 건축을 접했어요. 대중문화 콘텐츠가 가치 있는 문화적 수출품이 돼, 다양한 예술 분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어요.”
보처 관장은 버밍엄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시작해 관장 자리에 올랐다. 15년간 이곳에 몸담은 ‘버밍엄 맨’으로 미술관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약점을 극복하고 강점을 살려 현재의 성장을 이끌었다. 그는 큐레이터부터 출발한 전문가답게 관장 취임 이후 “큐레이터 간의 협력 강화”를 중요한 방향성으로 삼았다.
“미술관 내 재원을 가지고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컬렉션을 함께 키워나가려 노력했어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각 큐레이터 팀의 상호 이해와 협력이 중요했죠. 서로 경쟁하며 각자의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보고 협력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세운 거예요.”
보처 관장이 협력 강화를 강조한 것은 버밍엄 미술관이 가진 ‘태생적 약점’ 때문이었다. 그는 “지리적 특성상 관람객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며 “우리 고유의 컬렉션을 통해 대도시 미술관과는 차별화된 버밍엄만의 강점을 만들어가야 했다”고 말했다.
“다른 유사기관을 모방하지 않고, 우리만의 특징을 가지기 위해 고유의 소장품을 쌓아왔어요. 전체 소장품의 컬렉션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특정 지역 작품을 구매해야 할 때, 예산상 다른 지역 작품은 구매할 수 없는 경우가 생겨요. 큐레이터 팀 간에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를 쌓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 결과 버밍엄 미술관의 “2만 개가 넘는 소장품은 하나의 컬렉션처럼 연결점”을 가지게 됐다. 보처 관장은 “미국 남부 지역 깊은 곳에 있는 버밍엄 미술관을 알리기 위해 독특한 고유의 소장품을 수집했고, 이를 통해 멀리 있는 버밍엄까지 관객이 오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버밍엄 미술관은 어제도 오늘도 모험을 계속하고 있어요. 다른 미술관, 박물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리듬에 맞춰 우리만의 길을 가는 거죠. 다른 미술관이 과거에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리스크와 모험을 선택한 덕분에 버밍엄만의 강점을 가지고, 지금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어요. 버밍엄은 계속 해서 모험을 떠날 겁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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