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만져봐도 돼요? 독일에선 만져볼 수 있었거든요.”
2022 화랑미술제의 국제갤러리 부스에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 양혜규의 작품 앞에서 한 관람객이 물었다. 갤러리에선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작품”이라며 관객들의 참여를 권했다. 수많은 방울을 엮어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린 이 작품의 제목은 ‘소리 나는 동아줄’. 손으로 만지니 가만히 중심을 잡던 탄탄한 동아줄이 맑은 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청각도 깨운다. 전래동화 ‘햇님과 달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국제갤러리 부스엔 양혜규를 비롯해 박서보, 하종현, 이기종, 루이스 부르주아, 제니 홀저, 다니엘 보이드 등 국내 미술 애호가에게도 인기가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출품됐다. 관람객들은 이미 팔려나간 박서보 화백의 작품 앞에서 너나 없이 사진을 찍었다.
역대 최다인 143개 화랑이 참가한 제 40회 화랑미술제가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세텍(SETEC)에서 VIP 관람으로 막을 올렸다. 오후 3시 개막한 화랑미술제는 첫날부터 뜨거운 미술 시장의 열기를 반영했다.
행사장 입구에선 일찌감치 줄을 서는 보기 드는 광경이 연출됐다. 이미 정오부터 대기줄이 길어져, 입장 시간이 다 돼가자 행사장 바깥까지 줄이 이어졌다. 한국화랑협회에 따르면 이날 약 5시간 동안 3850명의 관람객이 방문, 화랑미술제 사상 최고 매출과 최다 방문객 기록을 세웠다. 화랑미술제 운영위원회는 “참가 갤러리 수가 전년 대비 30% 정도 늘어난 것에 따라 방문객 수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행사 시간이 3시부터 8시까지로 2시간 더 늘어난 것도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개막 당일 세텍은 쏟아진 관람객에 작품을 속속들이 감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국제갤러리의 박서보, 맥화랑의 창신, 감성빈, PKM의 서승원, 윤형근 작가의 그림이 몰려있는 3전시실 라인은 부스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관람객도 상당했다”고 말했다. 부스당 면적이 다른 아트페어에 비해 작은 반면, 원하는 작품을 누구보다 먼저 선점하려는 관람객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화랑미술제를 향한 뜨거운 열기는 매출 경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갤러리가 출품한 박서보 작가의 작품이 35만 달러(약 4억 2000만원)에 판매되고, 갤러리현대는 이강소 작가의 2억원 짜리 작품도 판매댔다. 조현화랑에선 김종학 작가 작품 2점, 이화익갤러리에서는 차영석 작가의 운동화 연작 대부분이 판매됐다. 갤러리우의 루이스 부르주아 판화 작품, 금산갤러리의 윤필현, UM갤러리와 수화랑의 곽훈, 갤러리가이아의 김명진, 아트스페이스H의 비비조 작품 등이 팔렸고 갤러리스클로의 이상민 작가 작품도 다수 판매 팔려나갔다. 올해로 세 번째 에디션을 맞은 신진작가 특별전 ‘줌-인(ZOOM-IN)’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엔 김선혁, 김시원, 김용원, 오지은, 이상미, 이혜진, 전영진 등 7명의 작가가 소개, 그 중 VIP 첫날 오지은 작가의 소품이 팔렸다.
화랑미술제 관계자는 “VIP 오픈일 판매액은 약 45억원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화랑미술제가 5일간 매출 72억원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첫날 북새통을 이룬 현장과 비교하면 일반 관람객을 본격적으로 받은 17일 오후의 행사장은 다소 한산한 편이었다. 오히려 관람객이 줄어 방문객들은 보다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갤러리의 부스마다 이미 팔려나간 작품들을 포장하느라 분주한 풍경이 연출됐다. 무엇보다 행사장은 성별, 연령대를 아우른 관람객들이 방문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기존 고객은 물론 신규, MZ 세대의 젊은 관람객이 많아졌다. 이전보다 미술작품에 대한 관심이 보다 폭넓고 대중 전반으로 확산됐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화랑미술제는 1979년 시작된 국내 최초 아트페어다. 국내 주요 아트페어 가운데 연중 가장 이른 시기에 열려 그해 미술시장 흐름을 볼 수 있다. 특히 올해는 작가 800여 명의 작품 약 4000점을 선보이는 만큼 보다 많은 작가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거장부터 신진 작가들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인기 작가의 서로 다른 작품을 여러 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갤러리 관계자들은 아트페어의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접근성과 작가, 작품의 발견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아트페어는 다양한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접근성과 투명한 가격 공개 등이 관람객의 입장에선 매력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이에 더해 꾸준히 인기 있는 거장 작가가 아니라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신진 작가들을 발견할 수 있고, 갤러리마다 주력 작가의 작품이 나오는 만큼 기존 전시에서 놓쳤던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된다”고 말했다.
화랑미술제는 1979년 시작된 국내 최초 아트페어로, 국내 주요 아트페어 가운데 연중 가장 이른 시기에 열려 그해 미술시장 흐름을 볼 수 있는 행사다. 올해엔 143개 화랑이 참가해 작가 800여 명의 작품 약 4000점을 선보인다.
고승희 기자 /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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