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은색 철제 구조물 내부에 ‘위잉’ 소리가 울려 퍼진다. 소리는 내부에 설치된 수많은 스피커를 따라 이동한다. 작품의 이름은 ‘궤도(orbit)’. 지구 주위를 궤도에 따라 회전하는 인공위성의 위치를 소리로 파악할 수 있게 만든 작품이다. 실제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보유한 19개 위성의 실시간 위치를 반영하고 있다.
궤도 프로젝트를 이끈 건 NASA 제트 추진 연구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댄 굿즈(Dan goods)다. ‘숫자’만 가득할 것 같은 NASA에서 ‘마음과 감정’을 이야기 하는 ‘예술가’다. 연구소 내 ‘더 스튜디오(The studio)’라는 팀을 이끌며 나사의 연구 성과나 활동 등을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화해서 설명한다. 조직 내 공학자와 과학자 간 커뮤니케이션도 담당한다. 이를테면 대중이 경험하지 못한 ‘우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다.
그의 특이한 활동 분야만큼 예술로 접어든 계기도 남다르다. 그는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미술 수업을 한 차례도 들어본 적 없다.
댄이 푹 빠졌던 것은 ‘판타지 풋볼’이라는 게임이었다. 팀 로고와 유니폼 제작에 열정을 다했다. 상상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직접 만들어냈다. 그가 청소년기를 바쳤던 일이었다. 진로 선택을 할 당시에도 상상하고 만드는 일을 그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술 전공을 택했다. 그렇게 댄은 ‘아트센터디자인대학(ArtCenter College of Design)’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해 20년 동안 나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댄 굿즈의 궤도(orbit) [NASA/JPL-CALTECH 제공] |
이달 19일 열리는 헤럴드디자인포럼2023에서 ‘내부의 우주에서 외부의 우주로(From Inner Space to Outer Space)’라는 주제로 강연하는 댄 굿즈는 헤럴드경제와의 서면인터뷰에서 본인을 ‘이야기꾼’으로 소개했다.
댄은 “NASA는 매우 복잡한 과제들을 처리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인력이 필요하다. 문제 해결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 중 우리팀은 복잡한 개념을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는 역할”이라고 본인의 업무를 설명했다.
그는 다른 작품인 ‘하이 주노(HI JUNO)’에서도 복잡한 존재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설계했다. 대중이 보고 느낄 수 없었던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하는 이야기였다.
2013년 목성 탐사선 ‘주노호’는 발사 후 지구의 중력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으려 지구 궤도로 잠시 돌아왔다. 이때 전 세계의 아마추어 무선통신가들이 주노호에 모스부호로 인삿말을 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댄은 일반적으로 보기는커녕 존재를 느낄 수도 없는 우주비행선의 존재를 일반 대중도 느낄 수 있게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댄은 이러한 프로젝트를 ‘숫자와 마음’을 융합해 시너지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과 공학의 객관성에 예술을 통해 감정과 마음을 더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숫자만으로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주로 사실과 수치를 통해 의사소통한다. 이를 넘어 마음과 감정까지 모두 전달할 수 있다면 그 조합은 보다 강력할 것”이라며 “마음은 강력한 힘이다. 나는 항상 두 가지(숫자와 마음)를 모두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의 방향성은 지금껏 진행한 프로젝트에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대중이 경험해보지 못한 태양계 행성들을 여행사 광고 포스터처럼 표현하고, 수많은 타일을 천장에 걸어 전 세계 곳곳의 날씨를 실시간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댄 굿즈는 지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100만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노래를 부르는 것을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상상하고 있다”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댄은 “전 세계 관객이 참여하고 함께 모여 어떤 방식으로든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항상 고민해왔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데 사용하는데, 구분 없이 ‘우리’가 마음이 연결될 때 훨씬 더 강력하고 인간적으로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세계인의 마음을 연결해 또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계획이다.
댄 굿즈는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답했다. 그는 “대중이 상상하지 못 했던 방식으로, 대중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 과정을 통해 경외심과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들을 선사하고 싶다”고 예술가로서의 지향점을 밝혔다.
이영기 기자 / 20k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