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진짜를 능가하는, ‘에코 퍼(Eco fur)’
By 오누리 (스토리텔러)
가짜가 진짜를 능가하는 시대가 올까, 사실 지금 그런 일이 패션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다. 칼 라거펠트, 일생에 단 한번도 ‘가짜’을 써본 적 없을 것 같은 그는 "가짜는 시크한 적 없지만 가짜 모피는 시크하다(Fake is not chic, but fake fur is)"고 말했다. 여기서 우린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바로 ‘페이크 퍼’다. 페이크 퍼는 염색 기술 등의 발달 덕분에 오리지널 퍼 못지 않은 품질은 물론 다양한 색상의 다자인 경쟁력까지 갖추게 됐다.
페이크 퍼가 급부상하게 된 또 다른 배경에는 천연 원료 낭비와 환경오염 문제, 동물 학대 문제 등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식 요구가 패션 산업으로 급격히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패션 기업들이 얼마나 잔인한 도축방법으로 동물의 털과 가죽을 얻고 있는지 적나라한 장면들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유포하면서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패션쇼나 디자인포럼 등에 등장한 패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나 최고 경영자들이 동물 학대와 관련해 망신을 사는 장면이 연출되면서 본의 아니게 ‘프리 퍼’ 선언을 한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한 무대에서 <셀린느>의 전 수석 디렉터였던 마이클 코어스의 머리 뒤로 한 여성이 나타나 동물 학대 사진을 들고 그를 웃음거리로 만든 해프닝은 코어스가 최근 ‘프리 퍼’ 선언을 하고 동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퍼 프리 리테일러 프로그램에 합류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마이클 코어스 뒤로 동물 권리 운동가의 신랄한 퍼포먼스;이미지 출처_패션 앤>
이처럼 페이크 퍼를 비롯한 ‘비건 패션’의 움직임은 어제 오늘의 트렌드는 아니다. 다만 모두들 ‘시도’에만 의미를 두었지 확장 가능성은 과소평가했던 게 사실이다. 소비자들의 의식개선이 실질적인 소비 트렌드로 이어질 것인지 여전히 더 지켜봐야겠지만, 기술 발달과 더불어 환경의 이상 변화는 아무래도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를 좀 더 빠르게 이끌어 낼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2014년 영국 브랜드 <쉬림프>의 성공을 보자. 럭셔리 패션 시장에선 독보적이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스텔라 맥카트니> 외에 페이크 퍼에 대한 가격 경쟁력 혹은 합리성에 회의가 만연했던 가운데 한 신예 브랜드가 비건 패션을 트렌드로 이끌어낸 것이다.
이른바 '루키 브랜드' 성공의 파장과 시장 성공의 가능성은 럭셔리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고급 재료와 품질을 내세워 브랜드 차별화 전략으로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그 우위를 점했던 럭셔리 패션 브랜드 입장에선 오리지널 퍼를 포기하기 쉽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잇달아 ‘퍼 프리’를 선언하고 있다.
2017년 최고 히트 아이템이었던 슬라이드 신발을 출시한 <구찌>는 지난 10월 ‘모피 반대 연합’에 가입했다. <구찌> 외에도 <드리스 반 노튼> <마이클 코어스> <휴고 보스>와 같은 주요 럭셔리 브랜드들이 모피 사용을 중단하고 있다. 게다가 이같은 퍼 프리 선언은 발전된 대체 기술, 재료와 월등한 디자인 등으로 페이크가 오리지널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브랜드의 능력을 과시하는 모습으로도 비쳐지고 있다. 마이클 코어스는 퍼를 사용한 동물성 제품의 부재에도 하이엔드에 적합한 미적 감각을 지닌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쉬림프 브랜드의 색상 화려한 가짜 퍼 2014 가을/겨울; 이미지 출처_Lonny.com>
그럼에도 여전히 ‘비건 패션’과 ‘윤리적 패션’의 잠재적 성장 가능성은 미지수이다. 특히 페이크 레더, 페이크 퍼처럼 환경보호를 위한 원료 제한은 산업의 성장을 더디게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을 통해 제품 개발의 과정과 생산 단계에서 자원의 소모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디자인과 품질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은 퇴보가 아닌 발전임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에코 산업의 시도로 인한 실패와 손해는 먼 미래를 내다봤을 때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지속가능한 디자인 경쟁력은 더없이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