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서라도‘알왕’득템…디자인 만난 SPA, 소비를 바꾸다
글로벌 SPA 브랜드 H&M,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 한정판 컬렉션
‘아이템 구매 위해 텐트·침낭 노숙 대기 진풍경 연출…모든 컬렉션 ‘솔드아웃’
‘줄 세우기’ 고도 마케팅 전략 적중…디자이너 콜라보레이션, 뷰티·식품 등 全산업 확대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6일 이른 아침 명동 H&M 눈스퀘어점. 20, 30대 젊은 층은 물론 60대 할머니까지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직 오픈도 하지 않은 매장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중에는 하루 월차를 내고 밤샘을 한 직장인도 있었다. 텐트와 침낭을 들고 와 노숙을 자처한 이들은 ‘알왕’을 영접하기 위한 무리들이었다. 알왕,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건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30)을 닉네임처럼 줄여 부르는 이름이다.
▶그들은 옷이 필요해서 사러 온 사람들이 아니다=고급 소재에 특유의 컷아웃, 조형적인 실루엣으로 현재 패션업계 핫 아이콘으로 불리는 알왕이 글로벌 SPA 브랜드 H&M을 위해디자인한 한정판(Limited edition) 컬렉션을 전세계 동시에 런칭한 이날 H&M 눈스퀘어점은 이틀 전부터 매장 앞에 긴 줄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금요일 밤 홍대나 이태원의 유명 클럽 앞 대기 줄을 연상케하는 장면이 이른 아침 옷 가게 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줄은 H&M 매장 밖 뿐만 아니라 매장 안에서도 이어졌다. 숍인숍(Shop in Shopㆍ매장 내 또 다른 매장) 형태로 마련된 알렉산더 왕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부에서도 줄을 서야하는 H&M 정책 때문이다.
종이 울리면 30명씩 10분간 쇼핑 시간이 주어진다. 이때부터 ‘득템(아이템을 획득한다는 뜻의 게임 용어에서 비롯) 전쟁’이 시작된다.
일각에서는 “전시용 줄 세우기” 혹은 “과도한 한정판 마케팅”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객들을 줄 세워 기다리게 함으로써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연출하는 것, 그리고 디자이너 한정판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굳이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왠지 사야만 할 것 같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유명 디자이너를 앞세운 고도의 마케팅 전략은 또 한번 적중했다. 이날 H&M 명동 눈스퀘어점과 압구정점에서는 매장 문을 연 지 불과 한시간여만에 남성 의류 대부분이 팔려 나갔고, 오후 3시쯤에는 전 컬렉션이 모두 ‘솔드아웃’됐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6일 H&M이 알렉산더 왕과 콜라보레이션 한 제품들을 전세계 동시에 공개, 판매했다. H&M 명동 눈스퀘어점에는 이른 아침부터 300여명이 넘는 인파가 몰여들었다. 20대, 30대는 물론 60대 할머니까지 있었다<왼쪽 사진>. 컬렉션 런칭을 이틀 앞둔 지난 4일 성수동의 대림창고 옆에 위치한 옛 공장터에서 H&M의 콜라보레이션 10주년을 기념하는 알렉산더 왕×H&M 컬렉션의 런칭 축하 파티가 열렸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인근 거리와 지하철 역사 등 곳곳에서는 ‘알렉산더 왕×H&M’ 로고가 박힌 검은색 대형 종이가방을 전리품처럼 맨 무리들이 삼삼오오 모여 ‘참전의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득템에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는 소장용으로 구매한 이들도 있지만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2배 가까운 프리미엄을 붙여 되파는 이들도 있다. 과거 이자벨 마랑과의 콜라보레이션 때에는 구매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던 쇼핑용 천가방이 인터넷 상에서 현금 거래되기도 했다.
디자인과 결합한 패션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이 사람들의 소비 패턴을 공격적으로 바꾸고 있는 셈이다.
▶패션 넘어 가전, 유통, 식품까지 “줄을 서시오”=패션업계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ㆍ협업)’의 역사는 H&M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7년 스웨덴에서 여성의류기업으로 출발한 H&M은 1990년대 후반 의류 제조와 유통을 일원화한 일명 SPA브랜드로 탈바꿈, 패션 트렌드를 재빠르게 반영하는 글로벌 패스트패션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패스트패션이 ‘싸구려 옷’, ‘조금 입다 버리는 옷’이라는 비아냥을 받기 시작하면서 H&M은 디자이너 콜라보레이션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이미지 변신을 꾀하기 시작했다.
2004년 샤넬의 칼 라거펠트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지난 10년동안 스텔라 맥카트니, 빅터&롤프, 로베르토 카발리니, 레이 가와쿠보, 꼼데가르송, 매튜 윌리암스, 지미추, 소니아 리키엘, 베르사체, 마르니, 마르지엘라, 이자벨 마랑 등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컬렉션을 진행하며 세계 패션업계에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브랜드 마케팅 영역을 개척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련되고 트렌디한 브랜드의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H&M의 콜라보레이션은 이제 단순한 브랜드 마케팅 차원을 넘어 신드롬을 낳고 있다. 패션 SPA 브랜드가 촉발시킨 디자이너 콜라보레이션 마케팅이 패션분야를 넘어 뷰티, 가전, 유통, 식품, 자동차 등 전 산업분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식품업계가 패션 디자이너와 콜라보레이션을 한 대표적인 사례는 코카콜라다. 코카콜라는 2008년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의상을 담당하며 유명해진 패트리샤 필드를 필두로 패션하우스 혹은 패션디자이너들과 함께 패키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이후 로베르토 카발리(2008), 모스키노(2009), 살바토레 페라가모(2010), 칼 라거펠트(2011), 장 폴 고티에(2012), 마크 제이콥스(2013)와 각각 콜라보레이션 패키지 컬렉션을 선보였다.
코스메틱 브랜드 랑콤 역시 2011년 S/S컬렉션으로 랑방의 수석 디자이너인 알버 앨바즈와 함께 콜라보레이션 한정판을 출시했고, 독일의 디저트 브랜드 슈니발렌은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인 폴 프랭크와 협업한 패키지를 올해 초 발렌타인 기념 에디션으로 선보였다.
패션 디자이너와의 콜라보레이션은 단순히 제품 케이스를 바꾸는 것을 넘어, 문화와 예술의 요소를 가미한 한정판으로 소장가치를 높임과 동시에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인지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전 산업분야에서 패션 디자이너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콜라보레이션이 소비 문화는 물론 상품 생산의 패러다임마저 바꿔놓고 있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기사원문보기 >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4111100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