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파리패션위크에 새로운 이름이 등장했다. ‘KIMHEKIM(김해김)’, ‘김해김씨’의 ‘김해김’이다. 프랑스패션연합회(FHCM)가 발표한 공식 쇼 스케줄에 샤넬, 디올, 루이비통과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린 김해김은 김인태(36) 디자이너가 이끄는 여성복 브랜드로 지난 2014년 론칭했다.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이자 또한 익숙한 ‘김해김’은 빠른 속도로 해외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시그니처 아이템은 한복에서 영감을 받은 오간자 시리즈, 큰 리본과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영감을 받은 비너스 시리즈다. 올해 초 삼청동에 플래그십 스토어 겸 스투디오를 오픈한 그를 헤럴드경제가 만났다.
▶성씨를 브랜드 네임으로 했다.=김해김은 다들 생각하시는 그 김해김이 맞다. 파리 있을때 ‘인태 킴’이 아니라 ‘김인태’로 불리고 싶어서 ‘김인태’라고 했다. 다들 성이 뭐냐고 묻길래 ‘김해김’이라고 했다. 그래서 ‘김해김 가문에서 온 김인태’가 됐다. 내 가문의 이름을 거는 것이 내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고 무게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파리의상조합의 정회원이다. 어떻게 가입했나?=파리의상조합 가입은 사실 그 경로가 공개돼 있지 않다. 대부분 현존멤버가 추천하거나 수많은 쇼나 프레젠테이션으로 포트폴리오가 쌓이면 초청받거나 한다. 나의 경우는 의상조합에서 일하는 사람의 연락처를 구해서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딱 5분밖에 시간이 없다고 했는데, 들어가서 2시간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이후 그 시즌부터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
파리패션위크를 패션올림픽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프레젠테이션은 일종의 예선이다. 여기서 통과 해야 쇼(본선)를 할 수 있다. 파리패션위크에 무대에 오르는 브랜드는 30~40개뿐이다. 김해김은 한 시즌만에 본선에 진출했다. 솔직히 말하면 운이 좋았다고 밖엔 못하겠다. 하하.
▶덕분에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기도 했다.=2020FW 파리패션위크때다. 프랑스 대통령이 디자이너들을 초청하는건 흔치 않은 일인데, 당시 파리 의상조합멤버들 전체가 엘리제 궁에 초청받았다. 장 폴 고티에의 은퇴자리였기에 더욱 각별한 자리였다. 톰 브라운 등 기라성 같은 디자이너부터 나같은 신진 디자이너까지 모두 모였다. 개인적으로는 이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기뻤다. 마크롱 대통령은 초청한 모든 디자이너들과 격려차원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했나?=어릴 때 할머니랑 같이 인형놀이를 했다. 할머니가 집에서 한복을 곧 잘 만드셨는데, 어깨너머로 배우고 저고리나 치마 만드는 것을 인형 사이즈로 재미삼아 따라 만들었다. 소중한 추억이다. 할머니와 함께하는 게임같은 것이었다. 그런게 일로 될 수 있을까 했는데 그게 디자이너였다. 스무살이 되어서야 패션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패션학교를 등록했고, 유학을 떠났다. 이후 10년 넘게 파리에서 공부하고 일했다.
▶오간자 시리즈는 여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가?=오간자나 실크를 만지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소재다. 반투명함이 여러 요소를 흡수한다. 오간자 안의 다른 소재가 겹쳐지며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끌어낸다.
▶브랜드 컨셉트를 정리한다면? 지금까지 시즌의 주제가 ME(2019FW), YOU(2020FW), HER(2021SS), HIM(2021PF)등이었다. 나르시즘적 접근이 느껴진다.=내가 생각하는 패션이란, 자신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거울은 김해김의 중요 컨셉트다. 나를 바라보고 나의 아름다움을 인지하고, 나에게 이러한 것들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장식예술의 첫 단추다. 그게 자아인식의 첫 단계이고 브랜드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본인 스스로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고, 어찌보면 가장 남을 의식하는 행동이다.
▶또 하나 시그니처 시리즈인 ‘비너스’는 굵은 진주 단추와 그 사이를 흘러내리는 실크 소재가 인상적이다. 비너스 재킷은 유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 읽힌다.=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영감을 받았다. 비너스가 조개를 타고 해변에 도착할 때, 오른쪽 옆에 평화와 봄의 여신 에이레네가 옷을 들고 서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비너스를 감싸 주려고 하는데, 이 다음 장면을 상상한 것이다.
현대미술도 좋지만 고전적 아름다움이 김해김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고전적 아름다움 자체를 우리 컬렉션 안에 어떻게 표현할까 하면서, 나름 상상하며 컬렉션을 풀어갔다.
▶모두다 온라인-컨텍트 리스로 몰려가는데 오프라인 플래그십 스토어를 지난 2월 삼청동에 열었다.=사실 김해김의 바이어 97%가 해외에 있다. 전세계 70여개 매장에 입점해있다. 그래서 플래그십스토어는 상징성 있는 곳에 열고 싶었다. 삼청동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가장 정리되어 있고, 한국의 전통적 아름다움과 현대미술이 공존하는 곳이다. 수 천 년의 시간차가 도로 하나를 두고 흘러간다. 김해김이 자리잡는다면 이곳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플래그십스토어는 문성수 작가와 협업해서 만들었다. 1층엔 포천석으로 만든 아트 오브제가 있다. 광화문을 짓는데 쓰였다는 포천석으로 천년의 무게가 김해김 안에 자리잡았다. 의자나 테이블도 모두 문 작가의 작품이다. (의자와 테이블을 가리키며)이 시리즈 이름이 ‘브러더(형제)’인데, 철판 원 장 하나에서 모두 나왔다. 자투리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이너다.
▶2009년 발렌시아가 컬렉션팀에서 일했고, 2014년엔 김해김을 론칭했다. 그해 바로 파리 패션위크에 입성하고, 2019년엔 한국 디자이너중 최연소로 파리의상협회 정식멤버가 됐다. 심지어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에서 역대 최초 단독수상도 했다. 거칠것 없이 달려왔는데, 앞으로의 김해김은?= 나는 디자이너이고 또 경영자다. 비즈니스플랜 10년 계획을 짜 놓고 움직이는데, 지금까지의 성취가 사실 이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나에게 남은 미션을 클리어 하는게 목표다. 올해는 플래그십 스토어와 온라인 스토어에 집중할 예정이다. 앞으로 장식예술 분야에서 모든 상품들, 삶이 아름다울 수 있게 장식하는 모든 행위, 아름답게 하는 모든 것들을 김해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의류, 코스메틱, 가구, 인테리어 소품 등 삶을 장식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 브랜드의 확장 방향이다. 음악, 연극 등 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요소를 같이 디벨롭 하고 싶다. “경영 자체가 예술이고 그게 패션이다”. 앤디워홀이 한 말인데,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