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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 갇힌 ‘한복의 족쇄’를 푼 이남자
202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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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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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한복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스타 디자이너가 되물었다. ‘BTS 한복 디자이너’로 더 유명한 김리을.

 

“사전에선 ‘한민족의 고유한 의복’이라고 정의하잖아요. 사실 한복은 시대마다 저고리도, 치마의 길이도 다 달랐어요.”

 

우아한 선을 만들어내는 저고리, 풍성하게 흘러내린 치마, 정갈하게 떨어진 두루마리…. 누구라도 떠올릴 상징적인 이미지에 한복을 가두기엔 반만년 역사 속 한민족은 너무도 ‘트렌디’했다. 한복을 정의하던 머릿속 그림부터 수정해야 했다. 고운 선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전통 의상’에 가둬둔 한복이 족쇄를 풀었다.

 

“모양만 한복인 것이 한복일까요, 원단을 써야 한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복의 멋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원단의 멋과 라인의 멋이에요.”

 

최근 서울 청담동에서 만난 김리을 디자이너는 “난 스스로를 한복 디자이너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 한복의 원단으로 옷을 만드는 사람이에요. 그걸 21세기의 한복을 봐주시는 거고요.”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BTS), 트렌드를 이끄는 가수 지코, 국가대표 배구선수 김연경은 물론 대통령 선거를 완주한 후보들까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얼굴들이 나서는 자리엔 디자이너 김리을(29)이 있었다. 비단 원단에 한국적 문양을 더해 정장, 트렌치코트, 미니스커트까지 구현한다. 경복궁 근정전에서 선보인 ‘아이돌(IDOL)’ 공연에서 입은 방탄소년단의 의상은 세계인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지화자 좋다’, ‘얼쑤 좋다’라는 가사에 힘 있는 안무가 더해질 때마다 도포 자락처럼 재킷이 펄럭였다. 해외 팬들은 “노래와 의상, 장소까지 찰떡이다”, “저 옷이 한복이라는 거냐. 춤출 때 휘날리는 의상이 너무 멋지다”며 환호했다.

 

한복에 관심을 가진 때는 20대 초반이었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난 그는 전주 한옥마을의 시작과 성장을 함께 했다.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한복 대여점이 생겨나고, 외국인들이 찾아 1시간 4000~5000원씩 하는 한복을 대여해 입으며 우리 문화 속으로 들어왔다.

 

“한옥마을에서 만난 외국인에게 왜 한복을 대여하냐고 물었더니, 원단이 예뻐서 입었다는 거예요. 그러더니 너희는 불편해서 안 입는 거냐고 묻더라고요.” 짧은 대화로 아이디어는 씨앗을 뿌렸다. 고작 30만원을 들고 사업을 벌였다. 애초에 ‘한복 디자인’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한복 대여점을 해보겠다는생각이었다. “외국인들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정장으로, 대신 고급스러운 한복 원단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30만원이야 망해도 잃어버린 거라고 생각하려 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출발이 좋았다. 2016년 만든 첫 번째 ‘한복 정장’이 말 그대로 ‘흥행’했다. 판매하는 의상도 아니었는데, 꼬리를 물고 지금의 명성과 커리어를 가져다줬다. 첫 정장을 만들며 이태원에서 걸어가는 흑인 모델을 섭외했다. “전문 모델도 아니었고, 길 가던 사람에게 부탁했어요. 모델료도 30만원 안에서 해결했고요.” 한복 정장을 입힌 흑인 모델에게 곰방대를 물리고 갓을 씌웠다. 파격에 감각이 더해졌다. 패션지에서 볼 법만 콘셉트는 사람들이 먼저 알아봤다. SNS에선 수많은 ‘좋아요’가 달렸고, 패션업계에선 러브콜이 이어졌다. 이 작품을 계기로 뉴발란스에서 브랜드 마케팅을 의뢰해 다양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 모델이 한현민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과정까지 수월하진 않았다. 쉽게 찾아온 행운이 아니었다. 운동복만 입고 다니던 20대 청년이 패션 디자인을 시작했다. ‘한복 정장’이라는 용어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아무도 안 된다고 했어요.” 정장을 만드는 사람들은 한복 소재로는 할 수 없다고 단언했고, 전통 한복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모두가 의심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청바지에도, 스커트에도 함께 입을 수 있어야 21세기 한복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한복 명장들을 찾아 가르침을 받았고, 전국을 발로 뛰며 우리 고유의 원단을 찾았다. “이미 있었던 원단이지만, 남들이 쓰지 않던 걸 찾아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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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한복 디자인이 아닌 한복 원단으로 만드는 정장이 출발이었기에 한복을 재해석할 수 있는 소재가 디자인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라이더 재킷 원단에 전통 디자인을 적용해 한복의 멋을 살린 의상으로까지 발전했다. 지난 7년간 원단부터 디자인, 생산까지 혼자의 힘으로 했다. ‘한복 정장’을 개척한 선구자이자, 용어를 만든 창시자이기도 하다. 디자이너로 협업 사례가 늘어난 뒤에야,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리을(ㄹ)’도 뒤늦게 만들었다. 한글 자음에서 딴 브랜드 명이다.

 

“외국인들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를 정말 많이 쓰더라고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갤럭시를 통해 삼성이 한국 브랜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한국에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한복 정장을 만들며, 외국인에게 입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에 브랜드 이름도 한국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중 자음 리을의 생김새는 외국인이 보기엔 아라비아 숫자 ‘2’와 닮아 친숙하게 느끼고요. 이게 숫자 2가 아닌 훈민정음의 ‘리을’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우리 문화를 소개하고 싶었어요.”

 

그는 스스로를 ‘문화 기획자’라고 말한다. 브랜드의 슬로건도 ‘한복에 문화를 입히다’라는 것이다.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의 일상 안으로 문화가 들어오는 것에서 떠올렸어요. 방탄소년단의 이탈리아의 팬이 가족들과 파스타를 먹으며 ‘오늘 BTS가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고 ’아이돌‘을 불렀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 자체로 이탈리아에 우리 문화를 입힌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나비효과가 일어나 한복와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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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브랜드와 협업하고, 스타들의 옷을 입히며 그의 디자인은 날개를 달았다.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디자인으로 완성한 의상을 판매하지 않았다. 김리을 디자이너는 “한글과 한복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지, 이윤 추구를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만약 시작부터 제 의상을 판매했다면 도리어 사람들에겐 이게 무슨 한복이냐, 네가 무슨 한복을 디자인하냐며 거부감을 들게 했을 지도 몰라요. 유명인사들이 제 의상을 입으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한복이라 받아들인 거고, 제 의상으로 한복에 관심을 가지는 마중물이 됐다고 생각해요.”

 

그는 “성실하게 거짓 없이, 열심히 말고 잘하자”는 것을 슬로건 삼아 20대를 보냈다고 했다. 디자이너 김리을의 본격적인 시작은 지금부터다.

 

“전 저의 눈으로 바라보고,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이에요. 브랜드 리을도 세상을 바라보며 받은 영감이 쌓여 저의 방식으로 표현될 거예요. 그게 문화를 입힌 21세기의 한복이 될 거예요. 이젠 ‘리을’을 한국의 명품 패션 브랜드로 만들어가고 싶어요. 역사가 짧다고 명품이 되기 어려운 건 아니니까요. 서울에서 우리의 미를 살려 만든 브랜드가 세계에서 인정받고 뻗어갈 수 있기를 희망해요.”

 

고승희 기자 /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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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한복#김리을#김리을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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